스웨덴 출신 시그넬 女핸드볼 감독
단체 구기종목 중 나홀로 파리行… 1988, 1992년 올림픽 2연패 영광
2008년 베이징 銅 이후 메달 못따
“韓 장점 많아… 세계 놀라게 할것”
헨리크 시그넬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 감독(가운데)이 14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선수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한국은 단체 구기종목 중 유일하게 여자 핸드볼이 파리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다. 진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우리만 올림픽에 나간다는 사실이 조금은 부담이 된다. 그래도 최고의 무대에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싶다.”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헨리크 시그넬 감독(48·스웨덴)의 말이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한국 단체 구기 종목 대표팀 가운데 유일하게 7월 26일(현지 시간) 개막하는 2024 파리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올림픽 대비 훈련 2일 차인 14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시그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헌신적이고 배우려는 열망이 매우 강하다. 그리고 한쪽에서 균열이 생기면 다른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커버한다. 유럽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한국만의 장점이다. 여기에 유럽 스타일 핸드볼을 잘 접목해 올림픽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2위를 했던 한국은 이번 올림픽 때 노르웨이(2위), 덴마크(3위), 스웨덴(4위), 독일(6위), 슬로베니아(11위)와 함께 A조에서 조별리그 경기를 치른다. A, B조 각 6개 팀 가운데 4개 팀이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하지만 A조 최약체로 평가받는 한국은 조별리그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8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지 모를 조별리그 4차전(8월 1일)에서 시그넬 감독은 모국 스웨덴을 상대한다. 그는 “(파리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한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대표팀 감독이 좋은 예가 될 거 같다. 같은 마음으로 한국이 잘하는 데만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신 감독과 마찬가지로 시그넬 감독 역시 자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적이 있다. 시그넬 감독은 2017년 세계선수권 때 스웨덴 여자 대표팀을 준결승까지 이끌었다. 스웨덴 여자 대표팀이 세계선수권 4강에 오른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2020년 대표팀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로는 스웨덴 남자 클럽팀을 이끌다 한국으로 건너왔다.
시그넬 감독은 “한때 세계 무대를 호령하던 한국 여자 핸드볼에 매료된 나머지 한국 문화, 음식에도 푹 빠진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 제안이 왔을 때 ‘이런 꿈같은 일이…’라고 혼잣말하며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면서 “스웨덴 대표팀을 맡았던 시절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며 웃었다.
한국 여자 핸드볼은 1988년 서울,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의 올림픽 2연패 달성을 비롯해 올림픽에서 메달을 총 6개 따냈다. 올림픽 여자 핸드볼에서 한국보다 메달을 많이 딴 나라는 노르웨이(7개)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여자 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 대회 동메달 이후 올림픽 메달과 멀어졌다.
한국 여자 대표팀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일본에 패한 뒤 세대교체에 돌입했다. 시그넬 감독이 국내 리그 모든 경기를 직접 또는 영상으로 보고 선수들의 장단점을 분석해 진천선수촌에 합류할 21명의 1차 훈련 명단을 확정했다. 시그넬 감독은 원래 소집 전날인 12일 입국 예정이었지만 8일 입국해 선수들과 심층 면담까지 마쳤다.
시그넬 감독은 “현재 한국 선수들 개인 기량이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 획득) 당시 선수들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 선수들은 속공 플레이, 난도 높은 고공 플레이를 잘한다”며 “한국 핸드볼에도 세계 강팀들을 당황케 할 장점들이 있다. 이런 부분들을 세밀하게 준비하겠다”고 했다.
시그넬 감독은 여느 외국인 대표팀 감독과 달리 경기 전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마다 선수들과 똑같이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린다. 시그넬 감독은 “선수들과 내가 ‘원 팀’이라면 이런 때도 동작이 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올림픽 때까지 최대한 준비된 팀을 만들겠다. 그러려면 여러분들의 응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 김배중 기자(동아일보)
사진 = 대한핸드볼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