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D-25]
여자핸드볼 선봉에 서는 류은희
한국 여자 핸드볼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신화는 저문 지 오래다. 역대 올림픽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 1984 LA 대회부터 2012 런던 대회까지 8회 연속 4강. 한국 구기(球技) 역사에서 여자 핸드볼 업적을 따라 갈 종목은 없다. 그러나 최근 유럽 국가가 약진하고 핸드볼 저변이 엷어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올림픽에선 2번 연속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 대표팀 어깨는 무겁다. 유일한 구기 종목 한국 대표 팀이기 때문이다. 전력은 열세지만 결의는 단호하다. 그 선봉은 맏언니 류은희(34·헝가리 교리)에게 맡긴다. 이번이 네 번째 올림픽 출전. 2012 런던 대회에서 43골(득점 3위)을 몰아쳤지만 4강에 머물렀던 아쉬움을 털어내려 한다.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그를 만났다. “파리 올림픽에서 유럽이라는 높은 벽을 상대하지만, 언더도그(underdog) 반란을 보여주고 싶다. 조별 리그를 통과해 8강에 가는 게 목표지만 8강만 간다면 4강도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며 각오를 다졌다.
◇조별 리그 1·2차전이 승부처
올림픽 핸드볼은 A·B조 6국씩 조별 리그를 거쳐 각 조 상위 4팀이 8강에 올라 토너먼트를 벌인다. 한국(세계 22위)은 A조. 세계 2위 노르웨이, 3위 덴마크, 4위 스웨덴, 6위 독일, 11위 슬로베니아와 경쟁한다. 냉정하게는 1승도 어렵다는 분석.
그러나 류은희는 “첫 경기 1차전 독일과 2차전 슬로베니아를 잡으면 된다. 덴마크도 해볼 만하다”고 했다. 2019년 세계 선수권에서 독일과 무승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선 슬로베니아에 27대31로 아깝게 졌다. 넘지 못할 상대는 아니다. 류은희는 “슬로베니아는 이번 올림픽이 첫 무대니 11번 나온 우리보다 좀 더 긴장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덴마크도 강하다곤 하지만 최근 일본에 1골 차로 졌다.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유럽서 쌓은 경험 쏟아붓겠다
류은희는 2019년 말 프랑스 프로 리그 파리92로 이적했다. 2020년 2월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는 등 활약도 눈부셨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발목을 잡았고, 국내로 복귀했다. 그랬던 류은희는 2021년 다시 헝가리 교리로 이적해 유럽 문을 두드렸다. 지난달 유럽핸드볼연맹(EHF)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일궜다. 그 유럽 챔스 우승 기억을 살려 올림픽에서 또다시 기적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유럽 선수들은 몸싸움이 격렬하다 보니 심판들도 관대한 편이에요. 휘슬이 불릴 때까지 머릿속에 그리던 플레이를 끝까지 하자고 얘기하죠. 핸드볼은 결국 팀플레이기 때문에 팀 동료를 이용하는 똑똑한 경기가 필요해요. 유럽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 헌신하는 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높은 키와 파워를 가진 유럽 선수들을 우리가 팀으로 막아내는 모습들, 한 골 한 골 넣기 위해서 동료들과 어떻게 움직여 공격하는지 봐주셨으면 해요. 핸드볼은 골을 많이 넣는 선수가 주목받지만, 그 속에 얼마나 팀을 위해 헌신하는지가 더 중요하죠. 유럽의 강한 공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골키퍼도 잘 봐주세요. 그런 게 조화를 이뤄야 이길 수 있어요.”
그는 “헝가리에서 뛰며 오른손 새끼손가락에 부상이 있었는데, 혹시나 병원 가면 결승을 못 뛰게 할까 봐 꾹 참고 뛰었다”면서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고 잘 치료받았다”고 했다. “원래 모습을 기복 없이 전 경기에서 모두 보여드리고 싶다. 한 해 팀에서 잘 보냈으니 대표팀에 와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8일 스페인으로 출국해 전지훈련을 갖고 이후 네덜란드를 거쳐 파리로 이동할 예정이다.
글 = 양승수 기자(조선일보)
사진 = 대한핸드볼협회